본문 바로가기
[육아]의 정원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말과 행동은?

by GraFero 2022. 3. 18.

# 둘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더듬다.


2020년 7월 어느날이었습니다.
당시 둘째 아이는 우리 나이로 4살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 10개월부터 가게 된 데다가, 회사에 눈치를 봐가며 최대한 빨리 데려가려고 하는데도 주중에는 6시 10~20분쯤 하원하는 일상이 이어진 것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날은 조금 일찍 퇴근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코로나 시기라 어린이집 안에 들어가는게 금지된 상황이라, 그날도 인터폰으로 '00반 00아빠에요. 00하원할게요~'라고 말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이내 아이가 나왔습니다. 제 기억속에 그날은 조금 어두운 느낌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본능적으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아아아..아아빠..."
평소 한 번도 말더듬을 하지 않았기에, 둘째아이의 누나도 지금껏 한번도 말더듬을 해보지 않은 터라, 그냥 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계속 말을 걸었는데, 말더듬이 이어졌습니다.

집에 와서 와이프와 아이의 상황을 지켜보며, 그제서야 어쩌면 진짜 심각한 상황이 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펐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린이집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서였지요.
선생님은 별일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네..."하며 전화를 끊는데 선생님도 힘든 하루를 보냈을 텐데 괜히 의심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과, 그렇다면 아이가 갑자기 왜 말더듬이 시작된 것인지 어떤 이유인지 답답함이 동시에 물밀듯이 몰려왔습니다. 당시 어린이집 7살 반에 첫째 아이가 다니고 있었기에, 경찰 입회하에 CCTV를 보자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원인에 대해서는 의문만을 남겨놓은 채 아이의 말더듬이 시작됐습니다.


# 한 달이내, 심해져만 가는 말더듬


한 번 심해지니, 걷잡을 수 없이 말더듬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10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을 끄고 안방에 다 같이 누워서 자려고 하는데, 둘째 아이가 아빠를 부르고 싶었나 봅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ㅏ아ㅏ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아아아아ㅏ아아...아...ㅇ아ㅏ아아아..


제가 아이 입에서 나오는 '빠'라는 소리를 그렇게 기다리게 될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이는 그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계속, 계속 시도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도하다가 지쳐서 그냥 자려나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도 그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속상했나 봅니다.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계속 '아..아앙.아아아ㅏ..'를 외쳤습니다. 마지막에는 거의 울부짖듯이 그렇게, 그렇게, 계속 시도했습니다. 저도 울고, 아내도 울고, 첫째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더욱 강해져야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줄을 쳐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말더듬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걱정은 깊어만 갔습니다.
양가 부모님, 가족도 모두 알게 되었고, 명절 때 뵈러 갈 때면 걱정의 목소리는 깊어만 갔습니다.
"괜찮다, 괜찮을꺼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누구도 언제 이런 고통이 없어질지 장담하지 못했기에 막연함만 더해졌습니다.

수소문 끝에, 와이프가 아동심리상담센터를 찾았고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통해 상황을 진단하고 놀이치료, 언어치료를 병행했습니다.
금방 괜찮아지지는 않았지만, 나아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가 시간이 흘러 너무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란 마음에서 계속해봤습니다.

이제는 좀 무던해졌지만, 어느 순간에는 약간 좋아지고, 갑자기 또 약간 더 심해지는 출렁임들이 초기에는 너무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좀 낫습니다.

그렇게 코로나 시기에 아이를 돌봐야 했고, 휴직을 했습니다.


#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는 이런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책에도 이런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지금까지 1년 반 정도 말더듬과 씨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험을 통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다른 큰 아픔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하실 수도 있습니다.
유년시절 말더듬이 심했던 '윈스턴 처칠'을 보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는 영국의 수상으로 명연설도 수없이 남긴 분 아니냐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모두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그것이 고착화되면 아이가 커가며 얼마나 놀림과 어려움을 겪을지가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런 걱정에 고통받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 10월경 답답한 마음에 충남 천안에 있는 '말더듬연구소'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집에서 거리가 너무 멀었고, 시간대가 좀 애매해서 아쉽지만 결국은 그곳에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주 3일 정도 너무 오랫동안 차를 타고 가서 치료까지 받고 다시 차를 타고 오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소 소장님은 정말 좋으셨습니다.)

와이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화도에서 천안까지 차를 타고 오시는 분이 있다구요. 또는 천안에 방을 잡아서 치료를 받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말더듬이 심해지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렇게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이에게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말 더듬지 말고, 또박또박 말해봐"

"천천히 말해봐"


이런 표현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스스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 말을 더듬을 때마다 자신감이 없어지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그 상황이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제 경험을 통해서 말씀드리자면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 의도적인 외면

어감이 좋진 않지만 외면이라고해서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닙니다. 말을 더듬는 것을 보면서 그냥 잘하고 있는 것처럼 못본척하는 겁니다. 그렇게 스스로 조금씩 괜찮아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말입니다.

2) 가족 친지들에게 도움 구하기

보통 어른들께서 격려의 의미에서 부지불식간에 "00야,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있으면 안 더듬고 말 잘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말씀을 해주시곤 합니다. 제 기억 속의 둘째 아이 말더듬 초반기에는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만 다녀오면 약간 더 심해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자신이 말더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가족 친지들에게 진지하게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급적 말더듬은 못 본 척해주시라고요.


아이에게는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1) 말더듬에 대해 화를 내며 강압적으로,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

2) 말더듬에 대해 모른 척 하지만, 표정으로는 실망하는 것을 감추지 못하는 것


입니다.

특히나 두번째 부분은 참....알면서도 힘든 부분입니다.
언젠가 아이의 말더듬이 거의 없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상투적인 표현으로 '하늘을 날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이 상승했다가 다시 떨어지는 것처럼, 아이의 말더듬이 다시 심해졌습니다. 그때는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끄럽지만요.


# 지금의 우리 아이는,


그래도 1년 반 동안 제일 고생을 한 것은 우리 둘째 아이입니다.
요 몇 달 말더듬이 줄어들어 다행이다 여겼지만, 올 3월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바뀐 환경 때문인지
유치원에 가는 것을 즐거워는 하는데 말더듬은 이전보다 더 나오고 있습니다.
이전 같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실망감이 몰려왔겠지만, 이미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인가요.
이제는 조금 괜찮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며 좋아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말더듬이 찾아오니, 완전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길어지긴 하네요.
부모의 역할은 '기다림에 인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만 바라보며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도 하면서 그렇게 기다려야 장기전에서 결국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덧,


아이의 틱으로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며 그래도 스스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잘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바래봅니다.
그 과정에서 지치지 마시고, 활기차게 바쁘게 생활해가실 것을 기대해봅니다.

아이의 말더듬으로 고민하시는 분께,
우리 아이도 말더듬이 있었는데, 금방 낫더라,
이런 식의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제 경험으로 이렇게는 말씀드립니다.

"잘 기다려주시고, 지켜봐 주시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갈 것이라구요.."
힘내시고. 응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댓글